전남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이 거주하는 영암군 삼호읍. 외국인 근로자들이 퇴근 후 장을 보기 위해 마트 앞을 오가는 모습.





영암군 시종면에 있는 태국 마트에 ‘국산’ 표시가 붙은 아열대채소가 진열돼 있다.





영암군 시종면의 한 전통시장에 차요테·오크라·새눈고추·샬롯 등 형형색색의 아열대채소가 등장해 눈길을 끈다.


전남 영암군 시종면의 한 전통시장. 한적한 농촌지역 오일장에 차요테·오크라·바나나꽃·새눈고추 등 형형색색의 아열대채소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인근 마트에서도 ‘국산’ 표시가 붙은 파파야와 여주가 매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들의 주 고객은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태국인 점원은 “하루 10명 안팎의 태국·베트남 손님이 온다”며 “면 단위 작은 동네인데도 태국 마트가 하나 더 생길 정도”라고 귀띔했다.



해남군 산이면의 한 태국 마트.


농촌의 일손부족을 메우기 위해 들어온 외국인 근로자들이 이제는 농촌의 ‘손님’이자 ‘이웃’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이 지역사회로 스며들면서 농촌의 풍경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전남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영암군 삼호읍에 가면 이같은 변화상을 쉽게 체감할 수 있다. 대불국가산업단지가 자리한 이곳은 퇴근 시간만 되면 전기자전거를 탄 외국인 근로자들로 거리가 붐빈다. 원룸촌을 중심으로 마트와 식당, 술집, 당구장, 휴대전화 가게가 즐비하다. 전남이주민통합지원센터와 영암군외국인주민지원센터도 인근에 자리해 노무·통역 서비스를 제공한다.
야식거리를 사러나온 태국 치앙라이 출신 파누맛씨(54)는 “이틀에 한번꼴로 장을 보러 오는데, 한번 올 때 3만∼5만원은 기본으로 쓴다”며 “고국에서 먹던 채소나 향신료를 쉽게 구할 수 있어서 고향 음식이 그리울 틈이 없다”고 밝혔다.
상인들에게도 이들은 귀한 손님이다. 이 지역에서 4년째 마트와 잡화점을 운영 중인 한 상인은 “근래엔 우즈베키스탄·방글라데시 등 무슬림 출신이 늘어 우리 매장은 할랄인증을 받아 관련 식품을 취급하고 있다”며 “국산 아열대채소와 쌀을 주로 사가고, 홍삼을 본국 가족에게 선물로 보내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해남군 산이면에서 태국식당을 연 지 3개월이 된 한효섭씨(51)는 “배추 주산지라 농업 현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계절근로자들이 많다”며 “태국·베트남 출신 손님들이 주로 찾고 있으며 포장음식을 포함하면 하루 평균 60여건을 주문받는다”고 밝혔다.
태국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도 “농촌 어르신들은 자급자족하는 경우가 많아 소비를 잘 안하는 반면, 20·30대가 대부분인 외국인 근로자들은 한번에 5만∼10만원어치를 사갈 정도로 지역의 큰손”이라며 “단적인 예로 불법체류자 단속이 강화되면 골머리를 앓는 건 고용주뿐 아니라 고객이 준 전통시장과 마트 상인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실제 외국인의 소비 규모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민정책연구원이 신한카드 사용현황을 분석한 결과 외국인의 카드 지출 총액은 2020년 3조4388억원에서 2023년 5조6281억원으로 3년 새 64% 급증했다. 외국인 1인당 연간 신용카드 이용금액은 2023년 기준 515만원으로 내국인의 73% 수준이며, 주로 거주 권역 내에서 소비가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지역 관광에도 나선다. 김정민 영암군외국인주민지원센터 상담팀장은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정남진 장흥 물축제’ 등 지역축제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모집 정원이 초과해 일찍 마감될 정도로 인기”라며 “인구소멸 위기에 직면한 농촌과 지방 소도시에 외국인 근로자들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말했다.
김도원 이민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농어촌분야 외국인 근로자수가 늘고 고용기간도 최대 8개월로 연장되면서 농촌 풍경도 변모하고 있다”며 “이들의 소득 증대와 소비활동 확대는 정부의 세수 증대로 연결되는 만큼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각 지역의 산업·인구 구조를 고려해 외국인 주민의 경제적 기여도를 높일 수 있는 정책적 인센티브를 다각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